돌 Stone

돌 Stone

장엄한 우주...무한히 긴 삶의 덩어리

내 앞에 특이한데라곤 눈꼽만치도 없고 가공되지도 않은 하나의 돌이 그냥 놓여 있다. 그런데 저 돌은 태초에 조물주가 빚어서 에베레스트 암반에 붙여 놓은 것인데 어느 날 벼락에 떨어져 나와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굴러내려 오면서 이리 저리 부딪치며 비바람에 씻기고 마른하늘 진자리를 다 보다가 티벳 라마승이 숨이 가빠서 잠시 앉았던 바위인 것도 같고, 아니면 백두산에서 굴러 내려오다 단군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신들메를 고쳐 신던 바위인 것도 같다. 아니면 춘향과 이도령이 연애하던 광한루의 기둥을 떠 바치고 있던 바위일 수도 있다.

싱드렁하게 보이는 저 돌에 그렇게 깊은 과거의 사연이 있는 줄을 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까? 니네 아버지가 옛날에 금송아지 수십 마리를 가지고 있었던들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현실주의 성향 때문일까? 아니면 소유욕에 미친 수석 매니아들이 보아도 전혀 감정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점점 무뎌지고 고갈되는 우리의 정서 때문에 아무런 감동과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저돌 안에서 무수한 삶의 파편과 역정(歷程)의 시간을 보았고 돌도 사람처럼 각기 지문과 표정이 다르고 달, 나무, 별 등 친구도 다양하다고 생각해왔다.

돌은 나에게 단순한 재료나 조형적 형상이 아닌 장엄한 우주이자 그 역사만큼이나 무겁고 무한히 긴 삶의 덩어리다.  나는 돌이 간직한 영겁의 역사 중 일부만을 보는 단순한 객이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돌의 내면을 이루는 무수한 사연처럼 갖가지 삶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신문(Newspaper)이나 잡지의 내용으로 크고 작은 자연석(Natural Stone)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이 시대 사람들이 영겁의 편린(片鱗)을 보고 느껴준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 2003 작가노트

전태원은 신문지와 여타 종이류를 잘게 파쇄해서 바탕(캔바스)에 산포 시킨 후, 그 위에 자연을 소재로 한 특정 이미지를 올려놓는다. 
유화와 콜라주가 함께 한 그림이다. 독특한 바탕처리와 함께 설정된 자연대상은 자연의 순환, 그리고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은유하는 매개로 작동한다. 고대 인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세계는 먼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작가 역시 모든 것은 먼지에 불과해서 종내는 모두 사라지는 편린임을 말한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 KT&G춘천상상마당초대전,2014)